er4

벌써 오래전 일이다.

비싼 가격으로 엄두도 못내던 어느 여름.

중고가가 저렴해지면서 여유돈으로 큰 맘 먹고 er4s를 데려오게 된 그날..

커널형 음감의 신세계가 열렸었다.

 

착용감 때문에 허락된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녀석이었는데 내 귀에서 잘 맞았다.

정말 토널밸런스가 좋고 각 영역대 소리선이 고르게 일정한 두께를 가진 녀석은 헤드폰 이어폰을 다 둘러 봐도 흔하지 않은데 정말 충격이었다.

 

이전 글에서 두번째로 꼽은 Tio녀석은 이녀석 보다 착용 부터 소리까지 더 편하지만 소리만 놓고 보면 er4s에 손을 들어 주겠다.

 

저번글에서 커널형 이어폰에서의 저음 관련해서 얘기했었는데 커널형에서의 저음은 대부분 가운데 공처럼 뭉쳐 있는 형태의 저음이 많아서 자연스러움이 부족해진다.

저음이 제일 바깥에서 전체를 감싸며 사라져야는데 유독 커널형 제품들은 공기를 내보내는 공간이 없거나 바늘구멍 하나라 그런지 만족스럽게 울려주는 제품이 없었지만, er4s를 처음 접했을 때 저음의 존재감과 위치 이런것들은 오버이어 헤드폰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을 표현해 줘서 정말 깜짝 놀랐었다.

물론 단일ba라서 댐핑감도 없고 질감도 떨어져 푸석거리며 사라지는 통에 그 후로도 진득하고 쫀쫀한 저음을 찾아 헤메었지만 커널형에서 그런 저음은 결국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1dd+Xba 제품들에서 느꼈던 저음 부분의 이질감도 대부분 짐감 문제가 아니라 그 저음 공간의 형성, 표현의 문제였다.

진동판으로 극저역~낮은 저역 까지 커버하는거라 당연히 저음의 질감은 만족스러웠지만 역시나 다른 음들이 울리는 중앙에서만 울리는 부자연스런 부분이 나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락이나 메탈 음악이 주가 아닌 잡식성(주로 보컬)의 나로선 이정도의 저음으로도 만족했지만 서서히 이명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저음의 텍스처 문제, 혼자있는 공간이 아닌 이상 누군가 말을 걸 때 마다 뺐다 끼웠다 하기가 너무 불편한 문제 등으로 er4s를 팔아버리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나는 녀석이다.

 

몇년 전 에티모틱에서 몇십년 만에 er4 시리즈의 업그레이드 모델을 출시했다.

기대에 차서 청음하러 갔는데 뭐랄까 이전 제품들 보다 만족도가 떨어졌기에 그냥 발길을 돌렸는데 가장 큰 이유가 저음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올리브웰티 타겟+기존 DF타겟 두 종류로 출시하였는데 저음 량은 늘어났지만 이전의 완벽한 저음 공간이 쪼그라 들어서 내가 항상 불만족 했던 기기들과 같은 저음 울림 영역이 되어었기에 나의 구매욕을 단번에 없애버렸다.

신 모델 들 중엔 차라리 er2se나 er2xr이 좋게 들렸고 구입까지 고민했지만 차분히 음감을 못하게 된 지 몇년이 되어서 고민만 하다가 포기하고 저렴한 cca c16 등을 구매했었다.

 

어제 서랍 뒤져서 찾아낸 MK5와 CKS550x를 다시 들어봤는데 에티모틱은 역시 에티모틱이라 느꼈습니다.

cks550x도 일본 여행중 청음해보다가 구입해 온 녀석인데 중저음 부분이 조금 부족한 점 외 가격대비 괜찮은 녀석이다.

 

간만에 mk5(순정 상태는 아니고 er4s 팔기전 있던 녹색필터 하나를 박아둔 녀석)를 들었더니 er2 모델 하나를 들이고 싶어져서 장터를 기웃거려 봤지만 비인기 모델이라 그런지 아쉽게도 매물이 하나도 없었다.

cca c16도 저음이 좀 더 넓게 감싸주면 좋겠는데 가격이 가격이기도 하고 er4에 부족한 부분들을 대체 해주기 때문에 만족하며 사용중이다.

 

er4s 저음에 만족못해서 저음 하면 dd지 싶어 돌고 돌다가 깨닳은 것은 커널형 공간에선 오히려 er4s나 c16같이 ba 특유의 존재감이 덜 한 부서지는 저음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dd+다중ba 제품들에서 들려 주는 dd 특유의 저음은 오히려 더 이질감을 느끼게 해줬던 것 같다.

기백만원 하는 고가 제품들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날고 기어봐야 귓구멍 안에서 울리는 저음이라 왜 몸에서 느낌이 안나지? 하는 이질감이 배가 되더라.. 차라리 ba 저음은 존재감 자체가 달라서인지 그냥 감동이 덜할 뿐 이처럼 이질감이 들진 않았는데 말이다.

 

er4s 쓴 지가 오래되어서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소리만 봤을 때 단점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1. 고음 끝이 둥글해서 짜릿함이 떨어진다. 

2. 저음의 질감이 부족하다.(dd와는 사뭇 다른 느낌)

정도였다.

물론 그보다 큰 단점들이 착용감, 케이블 길이와 무게 등으로 더 많지만 말이다;;

 

신형 er시리즈에선 외형적 문제, 재질개선으로 인한 크랙문제, 케이블 무게 등으로 인한 불편함 등은 고루 개선되긴 했다.

다만 소리적인 부분은 er2 외엔 기존 er4 보다 더 나빠졌다고 느낀다.

구형에서 완성된 자연스레 전체를 감싸 주는 저음이 사라지고 가운데 뭉쳐서 음악의 자연스러움을 깨버린다.

 

그나저나 koss sp330 진동판을 이식해서 ksc75 처럼 쓸 생각으로 떼놓았는데 귀찮아서 방치해 둔지가 벌써 2년이 되었다;;

 

참 어제 웹서핑 중 피듀 a93 아르테미스 라는 신모델 측정치를 보게 되었는데 보자마자 c16이 생각나더라.

가격을 찾아 보니 2백2십만이 넘어가는걸 보고 놀랬고, 물론 똑같은 측정치가 아닌것은 알겠지만 전체 라인이 비슷한데다 고음은 오히려 c16이 더 나온다.

그 돈이면 c16 사고 er4s, er2xr, HD600도 하나씩 사고 남는건 맛있는거 먹겠다 싶다.

 

참, 혹시나 er4를 들였는데 스테이징이 너무 좁다고 느낀다면 착용이 제대로 된 게 아니다.

나도 처음 들였을 당시 좌우로만 길고 좁은 스테이징이라고 사용기를 적었던 때가 있는데, 다 삽입 했다고 생각하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무서울 정도로 더 들어간다는 걸 뒤늦게 알았고 그 때 진정한 er4s의 소리를 경험 할 수 있었다.

이건 나름대로 커널형을 오래 써왔고 착용샷이나 착용기를 많이 봐왔기에 설마 정착용이 아닐꺼라고 생각치 못했던 것이었기에 나름대로 큰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었다.

 

정착용이 되면 저음이 정말 저 멀리서 넓게 감싸며 울리고 구멍 하나 없는 밀폐형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만큼의 개방감까지 느끼게 해준다. 즉, 절대 좁은 스테이징이 아니란 말이다.

만약 er4s 구입하고 스테이징이 좁다고 느껴진다면 팁사이즈를 바꿔보거나 더 깊이 착용 해보라 권한다, 이 때가 제대로 정착용이 된 거라고 말하고 싶다.

이 사실을 er시리즈를 2년 가까이 쓰고 난 이후에 알게 된 것이 당시엔 나의 음감 생활 가장 충격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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